서울특별시 좌표: 북위 37° 34′ 00″ 동경 126° 58′ 41″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울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서울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특별시 특별시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숭례문, 명동성당, 청계천, 경복궁 근정전, 63빌딩, N서울타워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숭례문, 명동성당, 청계천, 경복궁 근정전, 63빌딩, N서울타워 Flag of Seoul.svg Seal of Seoul.svg Slogan of Seoul I.SEOUL.U.jpg 시기 휘장 슬로건 Wikimedia | © OpenStreetMap 서울특별시의 지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도 서울특별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북위 37° 34′ 00″ 동경 126° 58′ 41″ 표어 I · SEOUL · U 너와 나의 서울 행정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 행정구역 25구 시청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시장 오세훈 (국민의힘) 지역어 경기 방언 인구 인구 9,532,428명 (2021[1]년) 인구밀도 15,780.28명/㎢명/km² 지리 면적 605.2 km2 해발 38 m 상징 시목 은행나무 시화 개나리 시조 까치 마스코트 해치 기타 시간대 한국 표준시 (UTC+9) 우편번호 01000 ~ 08999 지역번호 02 행정구역코드 KR-11 http://www.seoul.go.kr/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이었고, 고려의 남경이었으며, 조선의 수도가 된 이후로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중앙으로 한강이 흐르고,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불암산, 인릉산, 청계산, 아차산 등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서울의 면적은 605.2 km2로 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하였다. 2018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은 422조원이었다.[2] 목차 1 지명 2 역사 3 지리 3.1 산 3.2 강 / 하천 3.3 임야 3.4 지질 3.4.1 신갈 단층 3.5 도심 4 기후 4.1 대기 5 대도시권 6 행정 구역 6.1 선거구 7 인구 7.1 인구와 가구 그래프 7.1.1 일제강점기 7.1.2 대한민국 정부 수립 7.1.3 군사 정부 시기 7.1.4 신군부 시기 7.1.5 민주화 이후, 정보 혁명 시대 8 주요 기관 9 경제 9.1 공업 9.2 상업 9.3 업무 지구 10 교육 11 문화와 관광 그리고 주요시설 11.1 문화재, 박물관 11.2 도서관 11.3 공연 시설 11.4 대중매체 11.5 유적지 11.5.1 고궁 11.6 명소 11.7 공원 11.8 종교 시설 11.9 주요 의료 기관 11.10 축제 12 스포츠 12.1 축구 12.2 야구 12.3 농구 12.4 배구 12.5 스포츠 시설 13 교통 13.1 도로 13.2 버스 13.3 택시 13.4 철도 13.5 항공 13.6 공항철도 13.7 수상 교통 14 자매 도시 15 각주 16 외부 링크 지명 "서울" 어원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인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유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3]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 원래 의미에 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으로도 표기했다는 점과 신라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 즉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가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에 관한 정확한 발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게 없으며, 그 발음은 훈민정음 창제 후 "셔ᄫᅳᆯ"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서울 한자 음차 표기로는 이십일도회고시, 한경지략, 증보문헌비고[4]의 서울(徐菀), 동사강목, 북학의의 서울(徐蔚), 대동지지의 서울(徐鬱), 앙엽기의 서올(徐兀) 등이 있다.[5] 이처럼 조선 시대 서울은 한양, 한성(漢城) 외에도 서울(셔ᄫᅳᆯ), 경도(京都),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조(京兆)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이 가운데 한양과 한성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성저십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6]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으로 불렸으며,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이란 말은 도태되고 거의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7] 서울특별시 개정 로마자 표기: Seoul Teukbyeolsi 공식 표기: Seoul Special City 서울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쎄-울(Sé-oul)로 표기한 데서 비롯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처럼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한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성)이라 불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서우얼(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수이)을 서울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다. 일본어 표기는 '소우루'(ソウル)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문서에서, 서울특별시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게 굳어져 'Seoul Special City'로 되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에서 서울특별시 공식 영어 명칭은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이다.[8] 역사 이 문서는 간략화된 서울특별시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과거 서울에 대한 자세한 서술에 대해서는 한성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의 역사 선사 시대 면목동 유적 역삼동 유적 가락동 유적 암사동 유적 삼국 시대 위례성 북한산성 북한산주 남북국 시대 한산주 한양군 고려 시대 양주 남경 한양부 조선 시대 한성부 대한제국 한성부 일제강점기 경성부 미군정 서울특별자유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의 역사입니다. 선사 시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대표적 유적지로는 암사동 선사주거지가 있다. 삼한 중 마한에 속하였다. 삼국시대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서울의 동부에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이 있었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으나,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통일신라 삼국통일 후 685년에는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은 한산주가 관할하는 북한산군(北漢山郡)이 되었다. 757년에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북한산군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 918년(고려 태조 1년)에 한양군을 양주(楊州)로,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한주를 광주(廣州)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1067년(고려 문종 21년)에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1308년에 남경을 한양부로 개편하였고, 1356년(공민왕 5년)에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조선 태조가 1392년에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한양으로 천도했다. 당시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95년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고,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5부제를 5서제(署制)로 고치고, 47방 288계 775동이 되었다. 대한제국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개통하였다.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2년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1908년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가 훼손되었다. 일제강점기 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2로 확장되었다. 1943년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등 7개 구로 나누었다. 현대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9]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 km2로 확장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6월 28일에 점령했다. 9월 28일에 대한민국이 수복하였으나,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다. 1951년 3월 14일에 다시 서울을 수복하였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고,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1962년 광주군·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7면 54리를 편입하고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 km2가 되었다. 이 때 이른바 강남 등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이 대거 편입되었고,[10] 한강 이북에서는 동북부의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일대가 편입되었다. 1973년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구가 되었고, 605.33 km2로 시역이 확장되었다. 이후 기존의 행정구역을 분리하여 1975년 강남구, 1977년 강서구, 1979년 은평구, 강동구, 1980년 동작구, 구로구, 1988년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1995년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가 신설되고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서울 주변의 인천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 구조인 수도권이 형성되었다. 경조오부도 (1861년) 숭례문 (1900년경) 남대문로 (1937년) 지리 한강과 양화대교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풍경 NASA의 위성에서 찍은 서울 사진(2004년) 서울은 북위 37° 34′, 동경 126° 59′의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시의 중심으로 한강이 흐르고, 서울 도심에는 남산(270m), 인왕산(338m)이 있다. 시 주변으로 북한산(836m), 관악산(629m), 도봉산(740m), 수락산(641m), 불암산(510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아차산(295m), 지양산 등이 서울을 둘러싸며 경기도 및 인천광역시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11] 동서 간의 거리는 36.78 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 km2이다. 서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0.6%이며 남북한 면적의 0.265%이다. 서울특별시의 최북단은 도봉구 도봉동이고 최남단은 서초구 원지동이며 최동단은 강동구 강일동, 최서단은 강서구 오곡동이다. 산 서울의 산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삼각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가 만나는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는 관악산(629m), 청계산(618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등이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망우산, 아차산 등이 있다.[11] 서울의 주요 산 위치도 강 / 하천 한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의 중심에는 한강 하류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는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과 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11] 한강은 일제 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였다. 한강 이외의 주요 하천으로는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양재천, 여의천, 홍제천 등이 있다. 서울의 하천 지도 임야 서울의 임야 면적은 2006년을 기준으로 157.35 km2으로,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 km2, 관악구에 17.53 km2, 강남구에 16.11 km2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12] 지질 한반도 경기 지괴 내에 위치한 서울의 지반은 주로 중생대에 형성된 화강암과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화강편마암의 두 종류로 되어 있다. 중생대의 대보 화강암은 서울의 동북부인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와 북한산, 관악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고, 선캄브리아기 지층은 주로 서·남부인 마포구,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그 경계선은 대체로 서대문구 연희동-아현동-공덕동-용산구 삼각지역-동빙고동을 잇는다.[13][14]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15]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15] 신갈 단층 이 부분의 본문은 신갈 단층입니다. 추가령 단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신갈 단층은 한반도 경기 지괴 내 연천군에서 서울특별시와 성남시 분당구 등을 지나 평택시까지 이어지는 연장 130km의 주향 이동 단층이다.[16][17] 추가령 단층대의 일부이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지질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에 의하면 도봉구, 성북구, 동대문구, 강남구, 서초구 남부 등 서울특별시 동·북부를 지난다. 도심 서울 도심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11]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11] 이러한 지형은 조선시대에 잘 이용되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11]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11] 기후 창덕궁의 가을 풍경 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18](쾨펜의 기후 구분 Dwa)[19] 또는 온대 하우 기후에 속하며,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근 기온 상승으로 인해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 °C보다 높은 -2.4 °C로 높아져 대한민국 기상청은 온대 하우 기후(Cwa)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열섬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외곽 지역은 여전히 -3 °C 미만으로 내려간다는 점과 냉대 기후의 최한월 평균기온 기준을 0 °C 미만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중간정도 되는 기후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8.1 °C로 매우 크기 때문에,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몹시 무덥다. 최근 30년(1991년~202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8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6.1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1.9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도심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 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3.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15] 계절은 여름이 가장 길고 그 다음 겨울, 봄 순서대로이고 가을이 가장 짧다. 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5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맑고 따뜻해진다.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 심하면 35°C 이상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나 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시작된다. 겨울은 최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최근 30년(1991년 ~ 202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17.9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92.1mm, 겨울철에 67.3mm로 여름철에 강수가 크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 °C, 역대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1일의 39.6 °C이다. 서울 (1981-2010 평균, 극값 1907-현재)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 기온 기록 °C (°F) 14.4 (57.9) 18.7 (65.7) 23.8 (74.8) 29.8 (85.6) 34.4 (93.9) 37.2 (99.0) 38.4 (101.1) 39.6 (103.3) 35.1 (95.2) 30.1 (86.2) 25.9 (78.6) 17.7 (63.9) 39.6 (103.3) 평균 최고 기온 °C (°F) 1.5 (34.7) 4.7 (40.5) 10.4 (50.7) 17.8 (64.0) 23.0 (73.4) 27.1 (80.8) 28.6 (83.5) 29.6 (85.3) 25.8 (78.4) 19.8 (67.6) 11.6 (52.9) 4.3 (39.7) 17.0 (62.6) 일 평균 기온 °C (°F) −2.4 (27.7) 0.4 (32.7) 5.7 (42.3) 12.5 (54.5) 17.8 (64.0) 22.2 (72.0) 24.9 (76.8) 25.7 (78.3) 21.2 (70.2) 14.8 (58.6) 7.2 (45.0) 0.4 (32.7) 12.5 (54.5) 평균 최저 기온 °C (°F) −5.9 (21.4) −3.4 (25.9) 1.6 (34.9) 7.8 (46.0) 13.2 (55.8) 18.2 (64.8) 21.9 (71.4) 22.4 (72.3) 17.2 (63.0) 10.3 (50.5) 3.2 (37.8) −3.2 (26.2) 8.6 (47.5) 최저 기온 기록 °C (°F) −22.5 (−8.5) −19.6 (−3.3) −14.1 (6.6) −4.3 (24.3) 2.4 (36.3) 8.8 (47.8) 12.9 (55.2) 13.5 (56.3) 3.2 (37.8) −5.1 (22.8) −11.9 (10.6) −23.1 (−9.6) −23.1 (−9.6) 평균 강수량 mm (인치) 20.8 (0.82) 25.0 (0.98) 47.2 (1.86) 64.5 (2.54) 105.9 (4.17) 133.2 (5.24) 394.7 (15.54) 364.2 (14.34) 169.3 (6.67) 51.8 (2.04) 52.5 (2.07) 21.5 (0.85) 1,450.5 (57.11) 평균 강수일수 (≥ 0.1 mm) 6.5 5.8 7.4 7.8 9.0 9.9 16.3 14.6 9.1 6.3 8.7 7.4 108.8 평균 상대 습도 (%) 59.8 57.9 57.8 56.2 62.7 68.1 78.3 75.6 69.2 64.0 62.0 60.6 64.4 평균 월간 일조시간 160.3 163.3 189.0 205.0 213.0 182.0 120.0 152.5 176.2 198.8 153.2 152.6 2,066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20][21][22] 서울 (1991-2020 평균, 극값 1907-현재)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 기온 기록 °C (°F) 14.4 (57.9) 18.7 (65.7) 23.8 (74.8) 29.8 (85.6) 34.4 (93.9) 37.2 (99.0) 38.4 (101.1) 39.6 (103.3) 35.1 (95.2) 30.1 (86.2) 25.9 (78.6) 17.7 (63.9) 39.6 (103.3) 평균 최고 기온 °C (°F) 2.1 (35.8) 5.1 (41.2) 11.0 (51.8) 17.9 (64.2) 23.6 (74.5) 27.6 (81.7) 29.0 (84.2) 30.0 (86.0) 26.2 (79.2) 20.2 (68.4) 11.9 (53.4) 4.2 (39.6) 17.4 (63.3) 일 평균 기온 °C (°F) −1.9 (28.6) 0.7 (33.3) 6.1 (43.0) 12.6 (54.7) 18.2 (64.8) 22.7 (72.9) 25.3 (77.5) 26.1 (79.0) 21.6 (70.9) 15.0 (59.0) 7.5 (45.5) 0.2 (32.4) 12.8 (55.0) 평균 최저 기온 °C (°F) −5.5 (22.1) −3.2 (26.2) 1.9 (35.4) 8.0 (46.4) 13.5 (56.3) 18.7 (65.7) 22.3 (72.1) 22.9 (73.2) 17.7 (63.9) 10.6 (51.1) 3.5 (38.3) −3.4 (25.9) 8.9 (48.0) 최저 기온 기록 °C (°F) −22.5 (−8.5) −19.6 (−3.3) −14.1 (6.6) −4.3 (24.3) 2.4 (36.3) 8.8 (47.8) 12.9 (55.2) 13.5 (56.3) 3.2 (37.8) −5.1 (22.8) −11.9 (10.6) −23.1 (−9.6) −23.1 (−9.6) 평균 강수량 mm (인치) 16.8 (0.66) 28.2 (1.11) 36.9 (1.45) 72.9 (2.87) 103.6 (4.08) 129.5 (5.10) 414.4 (16.31) 348.2 (13.71) 141.5 (5.57) 52.2 (2.06) 51.1 (2.01) 22.6 (0.89) 1,417.9 (55.82)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23][24][25] 김포국제공항 (1981-2010 평균, 극값 1961-현재)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 기온 기록 °C (°F) 14.6 (58.3) 19.2 (66.6) 23.8 (74.8) 30.0 (86.0) 32.9 (91.2) 34.4 (93.9) 36.8 (98.2) 37.8 (100.0) 32.7 (90.9) 28.9 (84.0) 25.2 (77.4) 16.4 (61.5) 37.8 (100.0) 평균 최고 기온 °C (°F) 1.4 (34.5) 4.5 (40.1) 10.2 (50.4) 17.6 (63.7) 22.7 (72.9) 26.6 (79.9) 28.6 (83.5) 29.7 (85.5) 25.6 (78.1) 19.7 (67.5) 11.4 (52.5) 4.2 (39.6) 16.9 (62.4) 일 평균 기온 °C (°F) −3.8 (25.2) −1.0 (30.2) 4.5 (40.1) 11.3 (52.3) 16.9 (62.4) 21.5 (70.7) 24.5 (76.1) 25.2 (77.4) 20.1 (68.2) 13.3 (55.9) 5.8 (42.4) −0.9 (30.4) 11.5 (52.7) 평균 최저 기온 °C (°F) −9.1 (15.6) −6.4 (20.5) −1.1 (30.0) 5.1 (41.2) 11.6 (52.9) 16.8 (62.2) 21.1 (70.0) 21.4 (70.5) 15.1 (59.2) 7.3 (45.1) 0.4 (32.7) −5.9 (21.4) 6.4 (43.5) 최저 기온 기록 °C (°F) −23.5 (−10.3) −20.2 (−4.4) −11.2 (11.8) −6.5 (20.3) 2.8 (37.0) 9.0 (48.2) 13.0 (55.4) 11.2 (52.2) 3.9 (39.0) −4.7 (23.5) −11.6 (11.1) −19.1 (−2.4) −23.5 (−10.3) 평균 강수량 mm (인치) 18.1 (0.71) 20.0 (0.79) 40.7 (1.60) 58.0 (2.28) 96.2 (3.79) 119.4 (4.70) 357.2 (14.06) 307.5 (12.11) 155.4 (6.12) 49.7 (1.96) 47.6 (1.87) 19.0 (0.75) 1,288.7 (50.74) 출처: 항공기상청[26] 대기 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15] 2011년 환경부가 7대 도시의 대기 오염물질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51㎍/m3이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9㎍/m3로 나타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시는 전국 16개 지방(서울, 부산, 대구, 경기, 제주, 전남 등)에서 8위(7위: 대구 9위: 전북)를 하였고, 광역시나 특별시 중에서는 4위(3위: 대구 5위: 울산)를 하였다.(중위권)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청정연료 확대보급,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도로비산먼지 청소, 공사장 비산먼지 관리 등과 같은 대기질 개선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오면서 대기질이 좋아지기 시작했으나, 황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연에 서울의 대기질은 겨울과 봄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세먼지 농도가 100㎍/m3을 훌쩍 뛰어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출처 필요]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 때문에 서울의 미세먼지는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27] 대도시권 이 부분의 본문은 수도권 (대한민국)입니다. 경기 지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서울특별시의 행정 구역입니다.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은 25개 자치구와 424개 행정동이 있다. 한강 남쪽에 11개, 한강 북쪽에 14개 자치구가 있다. 2020년 4월말 주민등록 인구는 9,726,787명이다.[28] 가장 인구가 많은 구는 송파구,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이다. 자치구 세대 인구 면적 종로구 74,299 150,936 23.91 중구 63,091 126,126 9.96 용산구 111,037 229,369 21.87 성동구 135,563 298,249 16.85 광진구 165,579 350,016 17.06 동대문구 165,516 345,793 14.2 중랑구 182,433 395,072 18.5 성북구 194,095 442,174 24.56 강북구 145,049 312,691 23.61 도봉구 138,724 330,707 20.7 노원구 217,302 530,302 35.44 은평구 208,771 477,973 29.69 서대문구 142,559 312,809 17.6 마포구 176,385 374,426 23.88 양천구 178,257 457,132 17.4 강서구 264,111 588,281 41.43 구로구 177,432 405,271 20.12 금천구 111,787 232,396 13 영등포구 178,323 372,225 24.57 동작구 182,236 394,988 16.35 관악구 271,313 498,978 29.57 서초구 173,561 429,729 47 강남구 233,363 543,240 39.51 송파구 279,460 672,862 33.88 강동구 191,399 455,042 24.58 합계 4,361,645 9,726,787 605.25 서울특별시 행정 지도 한강 한강 한강 경기도 경기도 마포구 도봉구 중랑구 노원구 은평구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중구 용산구 동대문구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성동구 광진구 송파구 강동구 서초구 강남구 서대문구 동작구 영등포구 금천구 관악구 선거구 21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 49개 선거구로 나뉜다. 주민등록 인구(외국인 제외)에 따라 29만5천 명 미만인 자치구는 1개, 29만5천 명 이상 ~ 59만 명 미만인 자치구는 2개, 59만 명 이상인 자치구는 3개의 선거구를 가진다. 인구 고려 멸망 후 조선이 천도(1394년)한 후 조선 태종 때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서 과밀화 현상을 빚고 있다. 1919년에 인구 25만 명, 인구밀도 6,874명/km2이었던 것이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2,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2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에 시역을 확장하여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고 인구밀도는 5,430명/km2으로 감소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의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 6,628명/km2이었는데, 외국에서의 귀국, 한반도 북부지역 출신 등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2이 되었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에 인구밀도 12,055명/km2으로, 1949년에는 136.05 km2이었던 시의 면적이 268,35 km2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2이 되었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2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휴전과 환도로 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2,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명/km2,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2, 1980년 인구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2,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가 15,532명/km2이 되었다. 이렇게 계속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7만 명, 인구밀도 18,121명/km2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분당·일산·평촌·중동과 산본등의 1기 신도시가 개발되었고 이 마저도 포화상태로 현재 운정, 판교, 동탄등 2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에 의한 것이다.[29] 계속 감소하던 인구는 2003년 인구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2을 정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크다. 2009년 12월말 기준 인구는 10,464,051명, 4,116,660세대이고, 인구밀도는 17,289명/km2이다. 서울의 인구증가를 보면 1960년경부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 증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서울로 집중하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무작정 서울로 온 이농 인구 덕분이었다.[30] 서울은 자연증가보다 사회증가에 의하여 과밀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서울에는 교육기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서 취업을 하거나 생활 터전을 마련한다.[31] 다만, 2010년대 들어 서울의 높은 전세로 인해 서울의 인구순유출 속도가 한국 도시들 중 가장 빠르며, 2016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 인구가 1,0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상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00만명을 넘어선 서울의 인구가 28년만에 10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2018년 5월 기준으로 서울의 인구는 980만명이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대부분의 인구는 경기도로 이동하고 있으며, 세종시나 제주도로의 이동도 이루어지는 역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인구와 가구 그래프 일제강점기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군사 정부 시기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신군부 시기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민주화 이후, 정보 혁명 시대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주요 기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청와대 -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 대한민국 국회 - 대한민국의 입법부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대한민국 대법원 - 대한민국의 최고 법원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219)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 대한민국 헌법에 관한 분쟁을 판정하는 특별재판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15) 정부서울청사 - 대한민국 중앙행정기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209) 한국은행 - 대한민국의 중앙은행 (서울 중구 남대문로 39) 국제 백신 연구소 - 백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기관(서울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내) 경제 2014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27조 6020억 원이며, 실질성장률은 2.2%이다.[32]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롯데 등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있다. 대한민국 GDP의 22%를 창출하고 있으며, 금융 기관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2007년[33] 국내총생산 (10억원) 사업체 수 (개소) 은행예금 (10억원) 내국세 (10억원) 의료기관 (개소) 자동차수 (천대) 대학교 (개소) 전국 581,516 3,131,963 512,419 82,226 44,029 13,949 180 서울 127,175 735,258 259,355 35,436 12,396 2,691 42 집중도(%) 21.87 23.48 50.61 43.1 28.15 19.29 23.33 삼성 - 전자, 중화학 등을 중점 사업으로 하는 세계적인 기업 (서초구 서초동 1320-10) LG - 1947년 창업한 한국의 전자/화학 분야 기업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현대자동차 -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 (서초구 양재동 231) SK - 에너지, 통신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는 한국 3위의 기업 (종로구 서린동 99번지) 롯데 - 유통, 화학, 식음료 등을 중심 사업으로 활동하는 한국 재계 5위의 기업 (송파구 신천동 29) 공업 서울의 공업은 1919년에 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가산동 지역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34] 상업 서울의 상업은 4대문 안 서울 도심인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와 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과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35] 업무 지구 교육 서울특별시의 대학 목록 및 서울특별시의 고등학교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대학교 정문에 있는 조형물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국공립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캠퍼스),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광운대학교, 홍익대학교, 국민대학교, 숭실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들이 소재하고 있다. 대학교 40개교, 교육대학 1개교, 방송통신대학교 1개교, 전문대학 12개교 등이 있다.[36] 서울특별시의 학교 · 학생 · 교직원 현황 (2012년) 교육기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합계 학교 886개교 594개교 376개교 311개교 2,206개교 학생 87,997명 502,000명 315,241명 344,391명 1,262,970명 교직원 6,213명 29,762명 18,442명 23,245명 79,490명 자료 : 서울교육통계연보[37] 문화와 관광 그리고 주요시설 서울은 대한민국 문화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신문사·출판사·방송국·공원과 기타 문화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 박물관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서울특별시의 무형문화재,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서울특별시의 민속문화재, 서울특별시의 문화재자료 및 서울특별시의 박물관과 미술관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에는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운동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종합운동장, 목동에 목동운동장, 성산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다.[36] 국립중앙박물관 등 6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름 비고(내용)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 최대의 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문화재 전시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생활사 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도시 역사 박물관 전쟁기념관 전쟁사 박물관 덕수궁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소재)의 서울 분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 공공 미술관 도서관 서울에는 시립 도서관 23개 소가 있으며, 시립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자치구에서 설립한 구립 도서관이 있다. 최근 구립 도서관의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장서(藏書) 100만여 권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그외에도 공공 및 사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이 있다.[36]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틀:서울특별시의 도서관 공연 시설 세종문화회관 국립국악원 - 예술의 전당 옆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음악을 보존·전승하고, 그 보급 및 발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38] 국립중앙극장 - 남산 중턱에 있다. 해오름극장, 달오름극장, 별오름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으로 구성된다.[39] 세종문화회관 - 세종대로에 있다. 전국기준 도로원표, 세종대극장, 세종M시어터, 세종체임버홀, 세종예술아카데미로 구성된다. 롯데콘서트홀 - 잠실 롯데월드몰 내 예술의 전당 - 우면산 자락[40] 정동극장 - 덕수궁(경운궁) 옆 대학로 - 소극장과 연극장이 모여 있다. 블루스퀘어 - 용산구 한남동 한강진역 앞 비보이 전용극장 - 마포구 서교동 'SJ비보이즈' 건물 지하 대중매체 방송사 한국방송공사 (KBS)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하여 설립한 공영방송사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문화방송(MBC) - 특수 공공법인이 지배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준공영방송사 (마포구 성암로 267) SBS - 주식회사 형태의 지역 민영 방송사 (양천구 목동서로 161) TV조선 -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중구 세종대로21길 40) 매일방송 (MBN) - 매일경제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JTBC - 중앙그룹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채널A - 동아그룹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YTN - 정부출자기업 형태의 보도 전문 방송사 (마포구 상암산로 76) 연합뉴스TV -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가 대주주로 자회사 형태로 설립한 보도 전문 방송사 (종로구 율곡로2길 25) CJ E&M - Mnet, KMTV, tvN, OCN, X tvN 외 방송사업부문의 약 18채널을 운영하는 회사 신문사 서울의 도심 지역에는 대형 종합 신문사들의 본사가 몰려 있다. 도심인 중구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매일경제신문, 종로구에는 동아일보, 한국일보 본사가 있고, 마포구에는 한겨레가 위치하고 있다. 서울신문 - 1904년 7월 18일 창간. 대한매일신보를 근간으로 하는 신문사이다. (중구 세종대로 124) 조선일보 -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행 부수가 많은 최대 일간지 (중구 태평로 1가 61번지) 동아일보 - 1920년 민족 자본으로 창간된 일간지 (종로구 세종로 139)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경제 한국경제신문 중앙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 1989년 2월 1일 창간한 신문이다. (금천구 가산동 550-15) 문화일보 - 유일한 석간신문이다. 유적지 암사동 선사유적지(사적 제267호) - 선사 시대의 주거 유적지이다. 민무늬토기, 반달돌칼, 빗살무늬토기 등 100여 개의 수혈 거주지가 출토되었다. 풍납토성(사적 제11호), 몽촌토성(사적 제297호) - 백제의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토성 유적이다. 풍납토성은 백제 때의 하남위례성의 북성지로, 몽촌토성은 하남 위례성의 남성지(南城地)로 추정된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 - 한성 백제 시대의 돌로 만든 봉분군이다. 한양도성 - 조선 태조 때 서울을 수도로 정하면서 쌓기 시작한 성곽이다. 당시 한양을 산을 중심으로 둘러쌌던 성곽이다.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현재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 조선 왕조의 궁궐이다. 종묘 - 조선 시대 왕가의 신위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직단 -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성균관 - 조선 시대의 국립 학교로, 유교적 지식을 가진 관료와 유학자를 양성하던 고등 교육 기관이다. 북한산성((사적 제162호) - 수도 한양을 방어하던 성곽이다. 일부는 서울시 밖인 고양시에 위치하여 있으며, 북한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다. 조선 왕릉 - 선정릉, 헌인릉, 정릉, 의릉이 서울 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연산군묘는 서울 내에 위치해 있지만, 연산군이 폐위되었으므로 능이 아닌 묘로 부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아니다. 동묘 - 촉한의 명장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환구단 -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만든 곳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다. 장충단 - 대한제국 당시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통에 변을 당한 이들을 기리던 제단이다. 서대문 형무소 -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서울에 세운 형무소이다. 수많은 독립 투사들과 민주 투사들이 이곳에서 고문과 옥사를 치렀다. 고궁 경복궁 - 조선 태조 4년 창건된 조선 왕궁. 세종 때 정궁. 임진왜란 때 불 탔으나 고종 2년(1865년)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됨. 창덕궁 - 1405년(태종 5) 지어진 조선 왕궁.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창경궁 명정전 - 조선 왕들이 살았던 궁궐 중 하나이다. 창덕궁과 붙어 있다. 경희궁 흥화문 - 조선 궁궐 중 하나이다. 내부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덕수궁(전경) -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광무 연간 동안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광화문을 기점으로 서울의 중심 관광지를 순환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 서울특별시 | |||||||
| 특별시 | |||||||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숭례문, 명동성당, 청계천, 경복궁 근정전, 63빌딩, N서울타워 | |||||||
| |||||||
![]() 서울특별시의 지도 | |||||||
서울특별시 행정구역도 | |||||||
| 표어 | I · SEOUL · U 너와 나의 서울 | ||||||
|---|---|---|---|---|---|---|---|
| 행정 | |||||||
| 나라 | |||||||
| 행정구역 | 25구 | ||||||
| 시청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 ||||||
| 시장 | 오세훈 (국민의힘) | ||||||
| 지역어 | 경기 방언 | ||||||
| 인구 | |||||||
| 인구 | 9,532,428명 (2021[1]년) | ||||||
| 인구밀도 | 15,780.28명/㎢명/km² | ||||||
| 지리 | |||||||
| 면적 | 605.2 km2 | ||||||
| 해발 | 38 m | ||||||
| 상징 | |||||||
| 시목 | 은행나무 | ||||||
| 시화 | 개나리 | ||||||
| 시조 | 까치 | ||||||
| 마스코트 | 해치 | ||||||
| 기타 | |||||||
| 시간대 | 한국 표준시 (UTC+9) | ||||||
| 우편번호 | 01000 ~ 08999 | ||||||
| 지역번호 | 02 | ||||||
| 행정구역코드 | KR-11 | ||||||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이었고, 고려의 남경이었으며, 조선의 수도가 된 이후로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중앙으로 한강이 흐르고,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불암산, 인릉산, 청계산, 아차산 등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서울의 면적은 605.2 km2로 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등을 개최하였다. 2018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은 422조원이었다.[2]
지명[편집]
"서울" 어원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인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유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3]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 원래 의미에 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으로도 표기했다는 점과 신라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 즉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가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에 관한 정확한 발음을 확실하게 확인한 게 없으며, 그 발음은 훈민정음 창제 후 "셔ᄫᅳᆯ"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서울 한자 음차 표기로는 이십일도회고시, 한경지략, 증보문헌비고[4]의 서울(徐菀), 동사강목, 북학의의 서울(徐蔚), 대동지지의 서울(徐鬱), 앙엽기의 서올(徐兀) 등이 있다.[5] 이처럼 조선 시대 서울은 한양, 한성(漢城) 외에도 서울(셔ᄫᅳᆯ), 경도(京都),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조(京兆)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예도 있다. 이 가운데 한양과 한성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성저십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6]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으로 불렸으며,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이란 말은 도태되고 거의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7]
| 서울특별시 | |
|---|---|
| 개정 로마자 표기: | Seoul Teukbyeolsi |
| 공식 표기: | Seoul Special City |
서울 로마자 표기 'Seoul'은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서울을 쎄-울(Sé-oul)로 표기한 데서 비롯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서울을 'Séoul'로 표기하고, 스페인어권에서는 'Seúl'로 쓰나 모두 '쎄울'로 읽는다. 또,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Seoul'로 쓰고 영혼을 뜻하는 단어 'Soul'처럼 '쏘울'로 읽는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2006년 11월 13일 서울시 서브슬로건(Sub slogan)을 《Soul of Asia》로 지정하였다.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한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성)이라 불렀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서우얼(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수이)을 서울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다. 일본어 표기는 '소우루'(ソウル)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문서에서, 서울특별시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게 굳어져 'Seoul Special City'로 되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에서 서울특별시 공식 영어 명칭은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이다.[8]
역사[편집]
| 서울의 역사 |
|---|
- 선사 시대
- 삼국시대
-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서울의 동부에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이 있었다.
-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 551년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으나,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 통일신라
- 고려시대
- 918년(고려 태조 1년)에 한양군을 양주(楊州)로,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한주를 광주(廣州)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 1067년(고려 문종 21년)에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 1308년에 남경을 한양부로 개편하였고,
- 1356년(공민왕 5년)에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였다.
- 조선시대
- 조선 태조가 1392년에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한양으로 천도했다. 당시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 1395년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고,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
-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 1894년 갑오개혁 때 5부제를 5서제(署制)로 고치고, 47방 288계 775동이 되었다.
- 대한제국
-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개통하였다.
-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 1902년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 1908년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가 훼손되었다.
- 일제강점기
- 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2로 확장되었다.
- 1943년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등 7개 구로 나누었다.
- 현대
-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9]
-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 km2로 확장되었다.
-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6월 28일에 점령했다. 9월 28일에 대한민국이 수복하였으나,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다.
- 1951년 3월 14일에 다시 서울을 수복하였다.
-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고,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 1962년 광주군·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7면 54리를 편입하고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 km2가 되었다. 이 때 이른바 강남 등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이 대거 편입되었고,[10] 한강 이북에서는 동북부의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일대가 편입되었다.
- 1973년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구가 되었고, 605.33 km2로 시역이 확장되었다. 이후 기존의 행정구역을 분리하여 1975년 강남구, 1977년 강서구, 1979년 은평구, 강동구, 1980년 동작구, 구로구, 1988년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1995년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가 신설되고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었다
- 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서울 주변의 인천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 구조인 수도권이 형성되었다.
지리[편집]
서울은 북위 37° 34′, 동경 126° 59′의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는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시의 중심으로 한강이 흐르고, 서울 도심에는 남산(270m), 인왕산(338m)이 있다. 시 주변으로 북한산(836m), 관악산(629m), 도봉산(740m), 수락산(641m), 불암산(510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아차산(295m), 지양산 등이 서울을 둘러싸며 경기도 및 인천광역시와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있다.[11] 동서 간의 거리는 36.78 km, 남북 간의 거리는 30.3km이며, 면적은 약 605.25 km2이다. 서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0.6%이며 남북한 면적의 0.265%이다. 서울특별시의 최북단은 도봉구 도봉동이고 최남단은 서초구 원지동이며 최동단은 강동구 강일동, 최서단은 강서구 오곡동이다.
산[편집]
서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삼각산)을 최고점으로 한 고양·양주구릉과 경기평야가 만나는 지대에 있다. 주위에는 북한산(836m)·도봉산(717m)·인왕산(338m)·관악산(629m) 등 500m 내외의 산과 구릉이 자연성벽과 같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이다. 광주산맥의 한 줄기인 도봉산은 백운대·인수봉·노적봉의 3개 봉우리가 솟아 있는 북한산과 이어져 있고, 그 산줄기는 다시 남으로 뻗어 북악산(342m)을 솟게 하였다. 그리고 북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줄기에 낙산(125m), 서로 뻗은 산줄기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 남쪽으로 뻗은 것은 숭례문을 지나 남산(265m)·응봉(175m)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무악재의 안부(鞍部)를 지나 안산(296m)과 이어져 있는데 모두 구릉성 산지이다. 한강 남쪽에는 100m 이하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에 천연의 요새와 같이 서울의 외곽에 솟아 있는 관악산(629m), 청계산(618m), 구룡산(306m), 우면산(293m) 등이 있다. 그 외에 서울 동부에 불암산, 수락산, 망우산, 아차산 등이 있다.[11]
강 / 하천[편집]
서울의 중심에는 한강 하류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는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과 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11] 한강은 일제 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정비하였다.
한강 이외의 주요 하천으로는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양재천, 여의천, 홍제천 등이 있다.
임야[편집]
서울의 임야 면적은 2006년을 기준으로 157.35 km2으로,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 km2, 관악구에 17.53 km2, 강남구에 16.11 km2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12]
지질[편집]
한반도 경기 지괴 내에 위치한 서울의 지반은 주로 중생대에 형성된 화강암과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화강편마암의 두 종류로 되어 있다. 중생대의 대보 화강암은 서울의 동북부인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와 북한산, 관악산 일대에 분포되어 있고, 선캄브리아기 지층은 주로 서·남부인 마포구,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그 경계선은 대체로 서대문구 연희동-아현동-공덕동-용산구 삼각지역-동빙고동을 잇는다.[13][14]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15]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15]
신갈 단층[편집]
신갈 단층은 한반도 경기 지괴 내 연천군에서 서울특별시와 성남시 분당구 등을 지나 평택시까지 이어지는 연장 130km의 주향 이동 단층이다.[16][17] 추가령 단층대의 일부이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제공하는 지질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에 의하면 도봉구, 성북구, 동대문구, 강남구, 서초구 남부 등 서울특별시 동·북부를 지난다.
도심[편집]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11]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11] 이러한 지형은 조선시대에 잘 이용되었다.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11]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11]
기후[편집]
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18](쾨펜의 기후 구분 Dwa)[19] 또는 온대 하우 기후에 속하며,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근 기온 상승으로 인해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 °C보다 높은 -2.4 °C로 높아져 대한민국 기상청은 온대 하우 기후(Cwa)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열섬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외곽 지역은 여전히 -3 °C 미만으로 내려간다는 점과 냉대 기후의 최한월 평균기온 기준을 0 °C 미만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중간정도 되는 기후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8.1 °C로 매우 크기 때문에,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몹시 무덥다. 최근 30년(1991년~202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8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6.1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1.9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도심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 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3.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15]
계절은 여름이 가장 길고 그 다음 겨울, 봄 순서대로이고 가을이 가장 짧다. 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5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맑고 따뜻해진다.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 심하면 35°C 이상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나 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시작된다. 겨울은 최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최근 30년(1991년 ~ 202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17.9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92.1mm, 겨울철에 67.3mm로 여름철에 강수가 크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 °C, 역대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1일의 39.6 °C이다.
| 접기서울 (1981-2010 평균, 극값 1907-현재)의 기후 | |||||||||||||
|---|---|---|---|---|---|---|---|---|---|---|---|---|---|
|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 최고 기온 기록 °C (°F) | 14.4 (57.9) | 18.7 (65.7) | 23.8 (74.8) | 29.8 (85.6) | 34.4 (93.9) | 37.2 (99.0) | 38.4 (101.1) | 39.6 (103.3) | 35.1 (95.2) | 30.1 (86.2) | 25.9 (78.6) | 17.7 (63.9) | 39.6 (103.3) |
| 평균 최고 기온 °C (°F) | 1.5 (34.7) | 4.7 (40.5) | 10.4 (50.7) | 17.8 (64.0) | 23.0 (73.4) | 27.1 (80.8) | 28.6 (83.5) | 29.6 (85.3) | 25.8 (78.4) | 19.8 (67.6) | 11.6 (52.9) | 4.3 (39.7) | 17.0 (62.6) |
| 일 평균 기온 °C (°F) | −2.4 (27.7) | 0.4 (32.7) | 5.7 (42.3) | 12.5 (54.5) | 17.8 (64.0) | 22.2 (72.0) | 24.9 (76.8) | 25.7 (78.3) | 21.2 (70.2) | 14.8 (58.6) | 7.2 (45.0) | 0.4 (32.7) | 12.5 (54.5) |
| 평균 최저 기온 °C (°F) | −5.9 (21.4) | −3.4 (25.9) | 1.6 (34.9) | 7.8 (46.0) | 13.2 (55.8) | 18.2 (64.8) | 21.9 (71.4) | 22.4 (72.3) | 17.2 (63.0) | 10.3 (50.5) | 3.2 (37.8) | −3.2 (26.2) | 8.6 (47.5) |
| 최저 기온 기록 °C (°F) | −22.5 (−8.5) | −19.6 (−3.3) | −14.1 (6.6) | −4.3 (24.3) | 2.4 (36.3) | 8.8 (47.8) | 12.9 (55.2) | 13.5 (56.3) | 3.2 (37.8) | −5.1 (22.8) | −11.9 (10.6) | −23.1 (−9.6) | −23.1 (−9.6) |
| 평균 강수량 mm (인치) | 20.8 (0.82) | 25.0 (0.98) | 47.2 (1.86) | 64.5 (2.54) | 105.9 (4.17) | 133.2 (5.24) | 394.7 (15.54) | 364.2 (14.34) | 169.3 (6.67) | 51.8 (2.04) | 52.5 (2.07) | 21.5 (0.85) | 1,450.5 (57.11) |
| 평균 강수일수 (≥ 0.1 mm) | 6.5 | 5.8 | 7.4 | 7.8 | 9.0 | 9.9 | 16.3 | 14.6 | 9.1 | 6.3 | 8.7 | 7.4 | 108.8 |
| 평균 상대 습도 (%) | 59.8 | 57.9 | 57.8 | 56.2 | 62.7 | 68.1 | 78.3 | 75.6 | 69.2 | 64.0 | 62.0 | 60.6 | 64.4 |
| 평균 월간 일조시간 | 160.3 | 163.3 | 189.0 | 205.0 | 213.0 | 182.0 | 120.0 | 152.5 | 176.2 | 198.8 | 153.2 | 152.6 | 2,066 |
|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20][21][22] | |||||||||||||
| 접기서울 (1991-2020 평균, 극값 1907-현재)의 기후 | |||||||||||||
|---|---|---|---|---|---|---|---|---|---|---|---|---|---|
|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 최고 기온 기록 °C (°F) | 14.4 (57.9) | 18.7 (65.7) | 23.8 (74.8) | 29.8 (85.6) | 34.4 (93.9) | 37.2 (99.0) | 38.4 (101.1) | 39.6 (103.3) | 35.1 (95.2) | 30.1 (86.2) | 25.9 (78.6) | 17.7 (63.9) | 39.6 (103.3) |
| 평균 최고 기온 °C (°F) | 2.1 (35.8) | 5.1 (41.2) | 11.0 (51.8) | 17.9 (64.2) | 23.6 (74.5) | 27.6 (81.7) | 29.0 (84.2) | 30.0 (86.0) | 26.2 (79.2) | 20.2 (68.4) | 11.9 (53.4) | 4.2 (39.6) | 17.4 (63.3) |
| 일 평균 기온 °C (°F) | −1.9 (28.6) | 0.7 (33.3) | 6.1 (43.0) | 12.6 (54.7) | 18.2 (64.8) | 22.7 (72.9) | 25.3 (77.5) | 26.1 (79.0) | 21.6 (70.9) | 15.0 (59.0) | 7.5 (45.5) | 0.2 (32.4) | 12.8 (55.0) |
| 평균 최저 기온 °C (°F) | −5.5 (22.1) | −3.2 (26.2) | 1.9 (35.4) | 8.0 (46.4) | 13.5 (56.3) | 18.7 (65.7) | 22.3 (72.1) | 22.9 (73.2) | 17.7 (63.9) | 10.6 (51.1) | 3.5 (38.3) | −3.4 (25.9) | 8.9 (48.0) |
| 최저 기온 기록 °C (°F) | −22.5 (−8.5) | −19.6 (−3.3) | −14.1 (6.6) | −4.3 (24.3) | 2.4 (36.3) | 8.8 (47.8) | 12.9 (55.2) | 13.5 (56.3) | 3.2 (37.8) | −5.1 (22.8) | −11.9 (10.6) | −23.1 (−9.6) | −23.1 (−9.6) |
| 평균 강수량 mm (인치) | 16.8 (0.66) | 28.2 (1.11) | 36.9 (1.45) | 72.9 (2.87) | 103.6 (4.08) | 129.5 (5.10) | 414.4 (16.31) | 348.2 (13.71) | 141.5 (5.57) | 52.2 (2.06) | 51.1 (2.01) | 22.6 (0.89) | 1,417.9 (55.82) |
| 출처: 대한민국 기상청[23][24][25] | |||||||||||||
| 접기김포국제공항 (1981-2010 평균, 극값 1961-현재)의 기후 | |||||||||||||
|---|---|---|---|---|---|---|---|---|---|---|---|---|---|
|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 최고 기온 기록 °C (°F) | 14.6 (58.3) | 19.2 (66.6) | 23.8 (74.8) | 30.0 (86.0) | 32.9 (91.2) | 34.4 (93.9) | 36.8 (98.2) | 37.8 (100.0) | 32.7 (90.9) | 28.9 (84.0) | 25.2 (77.4) | 16.4 (61.5) | 37.8 (100.0) |
| 평균 최고 기온 °C (°F) | 1.4 (34.5) | 4.5 (40.1) | 10.2 (50.4) | 17.6 (63.7) | 22.7 (72.9) | 26.6 (79.9) | 28.6 (83.5) | 29.7 (85.5) | 25.6 (78.1) | 19.7 (67.5) | 11.4 (52.5) | 4.2 (39.6) | 16.9 (62.4) |
| 일 평균 기온 °C (°F) | −3.8 (25.2) | −1.0 (30.2) | 4.5 (40.1) | 11.3 (52.3) | 16.9 (62.4) | 21.5 (70.7) | 24.5 (76.1) | 25.2 (77.4) | 20.1 (68.2) | 13.3 (55.9) | 5.8 (42.4) | −0.9 (30.4) | 11.5 (52.7) |
| 평균 최저 기온 °C (°F) | −9.1 (15.6) | −6.4 (20.5) | −1.1 (30.0) | 5.1 (41.2) | 11.6 (52.9) | 16.8 (62.2) | 21.1 (70.0) | 21.4 (70.5) | 15.1 (59.2) | 7.3 (45.1) | 0.4 (32.7) | −5.9 (21.4) | 6.4 (43.5) |
| 최저 기온 기록 °C (°F) | −23.5 (−10.3) | −20.2 (−4.4) | −11.2 (11.8) | −6.5 (20.3) | 2.8 (37.0) | 9.0 (48.2) | 13.0 (55.4) | 11.2 (52.2) | 3.9 (39.0) | −4.7 (23.5) | −11.6 (11.1) | −19.1 (−2.4) | −23.5 (−10.3) |
| 평균 강수량 mm (인치) | 18.1 (0.71) | 20.0 (0.79) | 40.7 (1.60) | 58.0 (2.28) | 96.2 (3.79) | 119.4 (4.70) | 357.2 (14.06) | 307.5 (12.11) | 155.4 (6.12) | 49.7 (1.96) | 47.6 (1.87) | 19.0 (0.75) | 1,288.7 (50.74) |
| 출처: 항공기상청[26] | |||||||||||||
대기[편집]
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15] 2011년 환경부가 7대 도시의 대기 오염물질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51㎍/m3이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9㎍/m3로 나타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시는 전국 16개 지방(서울, 부산, 대구, 경기, 제주, 전남 등)에서 8위(7위: 대구 9위: 전북)를 하였고, 광역시나 특별시 중에서는 4위(3위: 대구 5위: 울산)를 하였다.(중위권)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청정연료 확대보급,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도로비산먼지 청소, 공사장 비산먼지 관리 등과 같은 대기질 개선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오면서 대기질이 좋아지기 시작했으나, 황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연에 서울의 대기질은 겨울과 봄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세먼지 농도가 100㎍/m3을 훌쩍 뛰어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출처 필요]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 때문에 서울의 미세먼지는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27]
대도시권[편집]
행정 구역[편집]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은 25개 자치구와 424개 행정동이 있다. 한강 남쪽에 11개, 한강 북쪽에 14개 자치구가 있다. 2020년 4월말 주민등록 인구는 9,726,787명이다.[28] 가장 인구가 많은 구는 송파구,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이다.
|
선거구[편집]
21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 49개 선거구로 나뉜다. 주민등록 인구(외국인 제외)에 따라 29만5천 명 미만인 자치구는 1개, 29만5천 명 이상 ~ 59만 명 미만인 자치구는 2개, 59만 명 이상인 자치구는 3개의 선거구를 가진다.
인구[편집]
고려 멸망 후 조선이 천도(1394년)한 후 조선 태종 때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서 과밀화 현상을 빚고 있다. 1919년에 인구 25만 명, 인구밀도 6,874명/km2이었던 것이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2,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2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에 시역을 확장하여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고 인구밀도는 5,430명/km2으로 감소하였다. 1945년 광복 당시의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 6,628명/km2이었는데, 외국에서의 귀국, 한반도 북부지역 출신 등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2이 되었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에 인구밀도 12,055명/km2으로, 1949년에는 136.05 km2이었던 시의 면적이 268,35 km2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2이 되었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으로 인구가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2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1953년에 휴전과 환도로 다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2,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명/km2,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2, 1980년 인구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2,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가 15,532명/km2이 되었다.
이렇게 계속 증가하던 인구도 1992년 인구 1,097만 명, 인구밀도 18,121명/km2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의 서울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분당·일산·평촌·중동과 산본등의 1기 신도시가 개발되었고 이 마저도 포화상태로 현재 운정, 판교, 동탄등 2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이주에 의한 것이다.[29] 계속 감소하던 인구는 2003년 인구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2을 정점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리는 서울 시내 대규모 재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크다. 2009년 12월말 기준 인구는 10,464,051명, 4,116,660세대이고, 인구밀도는 17,289명/km2이다.
서울의 인구증가를 보면 1960년경부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각종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 증대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농촌인구가 급격하게 서울로 집중하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생계가 어려워 무작정 서울로 온 이농 인구 덕분이었다.[30] 서울은 자연증가보다 사회증가에 의하여 과밀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서울에는 교육기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주로 서울에서 취업을 하거나 생활 터전을 마련한다.[31]
다만, 2010년대 들어 서울의 높은 전세로 인해 서울의 인구순유출 속도가 한국 도시들 중 가장 빠르며, 2016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 인구가 1,0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상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000만명을 넘어선 서울의 인구가 28년만에 100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2018년 5월 기준으로 서울의 인구는 980만명이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대부분의 인구는 경기도로 이동하고 있으며, 세종시나 제주도로의 이동도 이루어지는 역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인구와 가구 그래프[편집]
일제강점기[편집]
대한민국 정부 수립[편집]
군사 정부 시기[편집]
신군부 시기[편집]
민주화 이후, 정보 혁명 시대[편집]
주요 기관[편집]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 청와대 -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
- 대한민국 국회 - 대한민국의 입법부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 대한민국 대법원 - 대한민국의 최고 법원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219)
-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 대한민국 헌법에 관한 분쟁을 판정하는 특별재판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15)
- 정부서울청사 - 대한민국 중앙행정기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209)
- 한국은행 - 대한민국의 중앙은행 (서울 중구 남대문로 39)
- 국제 백신 연구소 - 백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기관(서울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내)
경제[편집]
2014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27조 6020억 원이며, 실질성장률은 2.2%이다.[32]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롯데 등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있다. 대한민국 GDP의 22%를 창출하고 있으며, 금융 기관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 2007년[33] | 국내총생산 (10억원) | 사업체 수 (개소) | 은행예금 (10억원) | 내국세 (10억원) | 의료기관 (개소) | 자동차수 (천대) | 대학교 (개소) |
|---|---|---|---|---|---|---|---|
| 전국 | 581,516 | 3,131,963 | 512,419 | 82,226 | 44,029 | 13,949 | 180 |
| 서울 | 127,175 | 735,258 | 259,355 | 35,436 | 12,396 | 2,691 | 42 |
| 집중도(%) | 21.87 | 23.48 | 50.61 | 43.1 | 28.15 | 19.29 | 23.33 |
- 삼성 - 전자, 중화학 등을 중점 사업으로 하는 세계적인 기업 (서초구 서초동 1320-10)
- LG - 1947년 창업한 한국의 전자/화학 분야 기업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 현대자동차 -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 (서초구 양재동 231)
- SK - 에너지, 통신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는 한국 3위의 기업 (종로구 서린동 99번지)
- 롯데 - 유통, 화학, 식음료 등을 중심 사업으로 활동하는 한국 재계 5위의 기업 (송파구 신천동 29)
공업[편집]
서울의 공업은 1919년에 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가산동 지역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34]
상업[편집]
서울의 상업은 4대문 안 서울 도심인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와 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과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35]
업무 지구[편집]
교육[편집]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국공립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캠퍼스),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광운대학교, 홍익대학교, 국민대학교, 숭실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들이 소재하고 있다. 대학교 40개교, 교육대학 1개교, 방송통신대학교 1개교, 전문대학 12개교 등이 있다.[36]
| 서울특별시의 학교 · 학생 · 교직원 현황 (2012년) | ||||||||||||||
|---|---|---|---|---|---|---|---|---|---|---|---|---|---|---|
| 교육기관 |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합계 | |||||||||
| 학교 | 886개교 | 594개교 | 376개교 | 311개교 | 2,206개교 | |||||||||
| 학생 | 87,997명 | 502,000명 | 315,241명 | 344,391명 | 1,262,970명 | |||||||||
| 교직원 | 6,213명 | 29,762명 | 18,442명 | 23,245명 | 79,490명 | |||||||||
| 자료 : 서울교육통계연보[37] | ||||||||||||||
문화와 관광 그리고 주요시설[편집]
서울은 대한민국 문화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신문사·출판사·방송국·공원과 기타 문화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 박물관[편집]
서울에는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운동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종합운동장, 목동에 목동운동장, 성산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다.[36]
국립중앙박물관 등 6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 이름 | 비고(내용) |
|---|---|
| 국립중앙박물관 | 대한민국 최대의 박물관 |
| 국립고궁박물관 | 조선 왕실의 문화재 전시 |
| 국립민속박물관 | 민속·생활사 박물관 |
| 서울역사박물관 | 서울의 도시 역사 박물관 |
| 전쟁기념관 | 전쟁사 박물관 |
| 덕수궁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소재)의 서울 분관 |
| 서울시립미술관 | 서울시 공공 미술관 |
도서관[편집]
서울에는 시립 도서관 23개 소가 있으며, 시립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자치구에서 설립한 구립 도서관이 있다. 최근 구립 도서관의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장서(藏書) 100만여 권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그외에도 공공 및 사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이 있다.[36]
공연 시설[편집]
- 국립국악원 - 예술의 전당 옆이다. 대한민국의 민족음악을 보존·전승하고, 그 보급 및 발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38]
- 국립중앙극장 - 남산 중턱에 있다. 해오름극장, 달오름극장, 별오름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으로 구성된다.[39]
- 세종문화회관 - 세종대로에 있다. 전국기준 도로원표, 세종대극장, 세종M시어터, 세종체임버홀, 세종예술아카데미로 구성된다.
- 롯데콘서트홀 - 잠실 롯데월드몰 내
- 예술의 전당 - 우면산 자락[40]
- 정동극장 - 덕수궁(경운궁) 옆
- 대학로 - 소극장과 연극장이 모여 있다.
- 블루스퀘어 - 용산구 한남동 한강진역 앞
- 비보이 전용극장 - 마포구 서교동 'SJ비보이즈' 건물 지하
대중매체[편집]
- 방송사
- 한국방송공사 (KBS) -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출자하여 설립한 공영방송사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 문화방송(MBC) - 특수 공공법인이 지배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준공영방송사 (마포구 성암로 267)
- SBS - 주식회사 형태의 지역 민영 방송사 (양천구 목동서로 161)
- TV조선 -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중구 세종대로21길 40)
- 매일방송 (MBN) - 매일경제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 JTBC - 중앙그룹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 채널A - 동아그룹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 YTN - 정부출자기업 형태의 보도 전문 방송사 (마포구 상암산로 76)
- 연합뉴스TV -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가 대주주로 자회사 형태로 설립한 보도 전문 방송사 (종로구 율곡로2길 25)
- CJ E&M - Mnet, KMTV, tvN, OCN, X tvN 외 방송사업부문의 약 18채널을 운영하는 회사
- 신문사
서울의 도심 지역에는 대형 종합 신문사들의 본사가 몰려 있다. 도심인 중구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매일경제신문, 종로구에는 동아일보, 한국일보 본사가 있고, 마포구에는 한겨레가 위치하고 있다.
- 서울신문 - 1904년 7월 18일 창간. 대한매일신보를 근간으로 하는 신문사이다. (중구 세종대로 124)
- 조선일보 - 대한민국에서 가장 발행 부수가 많은 최대 일간지 (중구 태평로 1가 61번지)
- 동아일보 - 1920년 민족 자본으로 창간된 일간지 (종로구 세종로 139)
- 경향신문
- 한국일보
- 서울경제
- 한국경제신문
- 중앙일보
- 매일경제신문
- 한겨레
- 국민일보
- 세계일보 - 1989년 2월 1일 창간한 신문이다. (금천구 가산동 550-15)
- 문화일보 - 유일한 석간신문이다.
유적지[편집]
- 암사동 선사유적지(사적 제267호) - 선사 시대의 주거 유적지이다. 민무늬토기, 반달돌칼, 빗살무늬토기 등 100여 개의 수혈 거주지가 출토되었다.
- 풍납토성(사적 제11호), 몽촌토성(사적 제297호) - 백제의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토성 유적이다. 풍납토성은 백제 때의 하남위례성의 북성지로, 몽촌토성은 하남 위례성의 남성지(南城地)로 추정된다.
- 서울 석촌동 고분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 - 한성 백제 시대의 돌로 만든 봉분군이다.
- 한양도성 - 조선 태조 때 서울을 수도로 정하면서 쌓기 시작한 성곽이다. 당시 한양을 산을 중심으로 둘러쌌던 성곽이다.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현재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다.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 조선 왕조의 궁궐이다.
- 종묘 - 조선 시대 왕가의 신위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사직단 -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 성균관 - 조선 시대의 국립 학교로, 유교적 지식을 가진 관료와 유학자를 양성하던 고등 교육 기관이다.
- 북한산성((사적 제162호) - 수도 한양을 방어하던 성곽이다. 일부는 서울시 밖인 고양시에 위치하여 있으며, 북한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다.
- 조선 왕릉 - 선정릉, 헌인릉, 정릉, 의릉이 서울 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연산군묘는 서울 내에 위치해 있지만, 연산군이 폐위되었으므로 능이 아닌 묘로 부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아니다.
- 동묘 - 촉한의 명장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 환구단 -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만든 곳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다.
- 장충단 - 대한제국 당시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통에 변을 당한 이들을 기리던 제단이다.
- 서대문 형무소 -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서울에 세운 형무소이다. 수많은 독립 투사들과 민주 투사들이 이곳에서 고문과 옥사를 치렀다.

댓글
댓글 쓰기